글 | 로저 셰퍼드, 번역 | 강의구.  

It was a hot, windless Saturday in late May when we turned off the main eastern seaboard road about halfway between Tongcheon and Koseong in the province of Kangwon-do. Thick dust swirled from under the vehicle as it shuddered west on a stony road that glared under a blue cloudless sky. Ahead in the distance, I could see the green blades of the Baekdu Daegan as it stood boldly over the flat treeless interior. The streams gasped in their empty beds. It was a grim arid landscape. This region, just north of the sparkling Diamond Mountains, was on the brink of a drought.

This was the beginning of my first expedition for 2017. I was travelling with the same crew from 2011 and 2012. The young intelligent and calm-headed Hwang Sung-chol from the NZKOR Friendship Society was our team’s main man and chief organizer. The older Han Myong-soo was our reliable and humorous driver. By now his vehicle had clocked over 350,000km but was still in excellent working order. The new member of our team, Kim Yu-chol, was a thin spotty faced lad with a polite demeanour. I figured he would be our lackey. In North Korea, we always travelled with a provincial officer. For Kangwon-do we had picked up Mr. Pak Seong-ho in Wonsan city this morning. He seemed a chatty and funny guy.

Mid-morning, we stopped on the barren roadside near a village called Sinnam-ri. Waiting for us was the local headman Mr. Lee Yeong-bok. I guessed he was about 50 years old, and like most North Koreans, trim and fit.

Studying the same maps I had used in 2011 and 2012, Mr. Lee pointed out a route that would take us to our target peak of Mae-san 1231m, tucked over the horizon somewhere. Jostling over more dehydrated stream beds, we drove deeper towards the Baekdu Daegan, passed through stone-walled villages with modest farm houses made from white-painted clay-packed walls wrapped around wood-framed streaky windows and loose-hanging rickety doors. The roofs were layered with wood or slate tiles. At the narrower ends of the houses, smokeless, bundle-clamped wooden chimney’s protruded from the skyline.  

바람도 없이 무더운 늦은 5월의 어느 토요일이었다. 우리는 강원도 통천과 고성의 중간쯤에서 원산금강산고속도로를 빠져나왔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 아래 눈부시게 번득이는 자갈길 서쪽으로 털털대며 달리는 자동차 밑에서 짙은 흙먼지가 회오리처럼 피어올랐다. 나는 멀리 앞쪽으로, 나무 한 그루 없이 평평한 내륙 위로 우뚝 솟은 백두대간의 푸르른 자락을 볼 수 있었다. 개울은 메마른 바닥에서 목이 타고 있었다. 무자비하게 메마른 광경이었다. 찬란한 금강산 바로 북쪽에 있는 이곳에 가뭄이 닥치고 있었다.

2017년 나의 첫 번째 원정은 이렇게 시작됐다. 나는 2011년과 2012년의 원정을 함께 했던 사람들과 동행하고 있었다. 조선뉴질랜드친선협회에서 나온 젊고 총명하고 침착한 황승철이 우리 팀의 대표 겸 간사였다. 나이가 지긋한 한명수는 우리의 든든하고 유머러스한 운전사였다. 그가 운전하는 자동차는 이제 350,000km 넘게 뛰었지만, 차량 상태는 아직도 훌륭했다. 우리 팀의 새로운 멤버 김유철은 호리호리한 체격에 얼굴에 점이 많은 예의 바른 젊은이였다. 나는 그가 우리 팀의 허드렛일을 맡을 것으로 짐작했다. 북한에서 여행할 때는 우리는 항상 지방 관리 한 사람과 동행했다. 강원도 담당으로 오늘 아침 원산에서 박성호 씨를 차에 태웠었다. 그는 허물없고 재미있는 친구처럼 보였다.  

우리는 신남리라는 마을 근처의 황량한 도로변에 차를 세웠다. 아직도 아침나절이었다. 여기서 동네 이장 이영북 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50세가량으로 보이는 그는 여느 북한인처럼 군살 없이 건강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이 씨는 2011년과 2012년에 내가 썼던 지도를 찬찬히 살펴보더니 지평선 넘어 어디엔가 숨어 있는 우리의 목적지 매산(1,231m)으로 가는 길을 가리켰다. 말라버린 개울 바닥 여럿을 헤치고 건너, 우리 차는 돌담이 둘러쳐진 여러 마을을 지나 백두대간을 향해 더 깊숙이 들어갔다. 동네에는 줄 쳐진 나무 창문과 느슨하고 덜컹거리는 출입문 주위를 둘러싼 흙벽에 흰 페인트를 칠한 아주 소박해 보이는 농가가 여럿 있었다. 지붕에는 판자 또는 석판이 층층이 덮여있었다. 농가의 한쪽 끝에는 나무를 모아 고정한 굴뚝이 연기는 안 나는 채로 하늘로 솟구쳐 있었다.  

Soon, the road petered out to grassy plains in an area known as Neungdong-ri. We stopped the vehicle, packed up, and dispatched ourselves to the mountains. We made our way up a spur on bush-fringed foot tracks that were deeply rutted by ox driven sleds used to haul timber out of the mountains. As we got higher, we started to get views of the East Sea. It was a couple more hours before we were able to escape the oppressive heat and find shade in the forests of the Baekdu Daegan, where it was forbidden to cut timber. Taking a rest, we drank water, snacked on sweet bread, smoked cigs, and sipped on acorn soju.

I could tell that today wasn’t going to be a photographic smorgasbord, this being a fairly dull area, so instead, I took the opportunity to ask Mr. Lee some questions. He had some good stories.

Pointing back over the plain beneath us, he told us how about five years ago, a female bear with two cubs had come down from the mountains into the village and nestled in a grove of trees near a spring.  She managed to stay in the area for over a year without hassling the locals before disappearing back to the hills.

“Were animals a problem?” I asked. Mr Lee said about fifteen years ago, the village often had problems with marauding wild animals, but these days it was just wild pigs. I asked him how the village people had handled the animals back then? He said that his uncle was the designated governmental hunter for the village and it was his job to shoo them away or kill them.

“Is he still around,” I asked. No, Mr. Lee replied. He was killed by a bear many years ago, and never replaced.

I almost choked on my soju. Clearing my throat, I spat out the obvious words, “What…a bear…how the hell did that happen?” Before Mr. Lee could delve into the story, Hwang, who was also amused, suggested we continue this later. We had to move on, as we were still a long way from Mae-san. Reluctantly I agreed.

얼마 안 가, 도로는 능동리라는 곳에서 초원으로 사라져버렸다. 우리는 여기에 차를 세우고 짐을 꾸린 다음, 산으로 향했다.

우리는 덤불이 늘어선 오솔길을 따라 돌출부로 올라갔다. 벌목한 나무를 산에서 끌어 내릴 때 사용한 발구 (역자주: 마소에 메위 물건을 실어 나르는 큰썰매)에 깊이 팬 자국이 난 길이었다. 고도가 높아지자 동해 쪽으로 조망이 트이기 시작했다. 약 두 시간 후에야, 우리는 뜨거운 열기에서 벗어나 백두대간의 숲속에서 그늘을 찾을 수 있었다. 백두대간에서는 벌목이 금지되어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쉬면서 물로 목을 축이고 달콤한 빵으로 간식을 하면서 담배를 피우고 도토리 소주도 조금 마셨다.

오늘은 사진 찍을만한 게 별로 없어 보였다. 이곳은 아주 단조로운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대신 나는 이장 이영북 씨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하기로 했다. 이 씨가 이야기를 잘한다고 들어서 기분이 좋았다.

우리 아래로 펼쳐진 평야를 뒤쪽으로 가리키며, 이 씨는 5년 전쯤에 어미 곰 한 마리가 새끼 곰 두 마리와 함께 산에서 마을로 내려와 약수터 근처의 나무숲에 자리를 잡았던 이야기를 했다. 어미 곰은 동네 사람들을 괴롭히지 않고 1년 넘게 머물다가 산으로 사라져버렸다.

“동물이 문제를 일으키나요?” 내가 물었다. 이 씨는 15년 전쯤에는 야생동물 습격으로 동네에 피해가 자주 있었지만, 지금은 주로 멧돼지만 내려온다고 했다. 나는 이 씨에게 그 당시에는 야생동물 문제에 어떻게 대처했는지 물어봤다. 이 씨는 그의 삼촌이 정부가 지정한 동네 포수였고, 동물들을 쫓아내거나 죽이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고 했다. “삼촌이 아직 살아계신 가요?” 아뇨, 그가 대꾸했다. 여러 해 전에 그의 삼촌은 곰에 물려 죽었고 그의 자리는 다른 사람으로 대체되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마시던 소주에 사레가 들릴 뻔했다. 목을 가다듬으며 나는 당연한 말을 내뱉었다. “뭐라고요…곰이…대체 어째 그런 일이?” 이 씨가 이야기 속으로 파고들기 전에, 역시 재미있게 듣고 있던 황승철이 나섰다. 이야기는 다음에 계속하기로 하고 매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아 있으니까 그만 일어나 산행을 계속하는 것이 어떠냐고 했다. 나는 마지못해 그러자고 했다.

The stifling heat made the climb hard. It was some hours more before we achieved a decent altitude, just over 1000m, which justified another shady rest stop. I prompted Mr Lee to continue his story.

His uncle had been in the mountains for some days and his family was concerned, so some volunteers went out to search for him. They found him dead and mangled on a trail, not far from where we now sat conversing. They ascertained that he had been killed by a bear, not eaten, just mauled to death. No one was sure how or why this happened, but Mr. Lee explained that it was the tactic of some bears, if they felt they were being pursued, to circle back and ambush their pursuer.

We all sat silent for a short time to ponder that.

“Are there still bears here?” I asked. Mr. Lee believed there were. Some people, he added, even believed that tigers still existed. 

We got up and kept walking, arriving at a wide, sloped area that appeared to be a summit. In the shady recess of the chestnut trees, I could see the outline of old leaf-filled fighting trenches. It wasn’t the first time I had seen these in Korea.

“Where are we?” I queried. Satgat-bong, Mr. Lee replied.

We all sat down and took another rest. On the map, Satgat-bong 1143m was ‘still’ a long way from Mae-san. “What about these trenches?” I asked. Mr. Lee came up with another telling story.

The Chinese PLA dug them during the Korean War, Mr. Lee told us. He pointed to what had been their command post, not far from us, now just an overgrown heap of hand shifted stone. But the story got better. Not long after the Korean War, Mr. Lee told me, some South Korean soldiers were found up here. As I listened to the North Koreans talk, I heard them refer to these South Koreans as Bi-jeok. These Bi-jeok had holed up nearby and gained a reputation for being a nuisance to the local populace, as they would sneak down to the village and steal food. This continued for some years, Mr. Lee said. Searches failed until one day they were found hiding in a cave. A total of ten frail and hungry men came out and surrendered.

“Were they then killed?” I inquired.

숨 막히는 열기로 인해 등산은 힘들었다. 몇 시간 뒤 1,000m가 넘는 높은 곳으로 오른 후에야 그늘을 찾아 쉬기로 하고 이 씨에게 이야기를 계속하도록 재촉했다.

그의 삼촌이 산에서 내려올 날이 며칠이나 지나도 내려오지 않자 가족들은 그가 어디 있는지 걱정을 하게 됐고, 자원자 몇 명이 삼촌을 찾아 나섰다. 그들은 삼촌이 죽어 엉망이 된 시신을 어느 산길에서 발견했다. 우리가 지금 앉아서 이야기를 듣고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수색조는 삼촌은 곰이 죽였으나, 곰에게 먹히진 않았고 그냥 물려 죽은 것으로 확인했다. 아무도 어떻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장담할 수 없었으나, 이 씨는 이것은 ‘일부’ 곰의 전술이라고 설명해줬다. 곰이 자기가 추적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면 추적자 주위를 거꾸로 돌아 숨어있다가 역습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잠깐 소리 없이 앉아 그 말을 곰곰이 되새겼다.

“여기에 곰이 아직도 있어요?” 내가 물었다. 이 씨는 아직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심지어 호랑이가 아직 있다고 믿는 사람도 있다고 이 씨는 덧붙였다.

우리는 일어나서 계속 걸어 정상으로 보이는 넓은 경사지에 도착했다. 밤나무 그늘의 후미진 곳에 낙엽이 들어찬 오래된 참호의 윤곽을 볼 수 있었다. 내가 한반도에서 이런 참호를 본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어디지요?” 내가 물었다. “삿갓봉.” 이 씨가 대꾸했다.

우리는 모두 주저앉아 또 한 번 휴식을 취했다. 지도에 삿갓봉(1,143m)은 ‘아직도’ 매산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여기 참호는 뭐지요?” 이 질문에 이 씨는 인상적인 이야기를 하나 더 꺼냈다.  

참호는 ‘조국해방전쟁’ 때 중국인민해방군이 팠던 것이었다. 그러면서 이 씨는 우리가 앉아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당시 그들의 지휘소를 가리켰다. 지금은 풀만 무성하게 자라있는 손으로 쌓아올린 돌무더기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야기는 더 재미있어졌다. 이 씨의 이야기는 조국해방전쟁이 끝난 지 오래되지 않았을 때였는데, 여기서 남한 군인들이 발견됐다고 한다. 나는 북한인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고 있었다. 그들이 남한 군인들을 ‘비적’이라고 부르는 것이 들렸다. 비적들이 이 근처에 은신하게 되면서 이들은 지역 주민들로부터 성가신 존재로 일종의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들이 마을로 몰래 내려와서는 음식을 훔쳐갔기 때문이었다. 이 씨는 이런 일이 몇 년간 계속됐었다고 했다. 그들에 대한 수색이 실패하다가, 마침내 어느 날 굴 안에 숨어 있는 이들을 발견하게 됐다. 모두 10명의 쇠약해지고 굶주린 비적들이 굴에서 나와 항복했다.

“그다음 그들을 죽였나요?” 내가 캐물었다.

Mr. Lee wasn’t quite sure what to say, and perhaps didn’t know the answer to my question. As he was about to say something, Mr. Pak, the provincial officer, jumped in, perhaps in an attempt to hide the gruesome news. They weren’t killed, he said, but became prisoners and would have, after some time, been given the choice to become North Koreans or be repatriated back South. His answer put a cloud on the timing of this incident because if it had happened after the war, they would have been interrogated and killed as insurgents, not dragged off as PoW’s.

We got up and walked southwest along the tree-clad ridge. Between the gaps in the trees, I could make out the Baekdu Daegan ahead, but it was still far off. I knew we weren’t going to make it there in time, so I started looking for a viewpoint that might allow me to take some decent photos. There weren’t any. So, I found a suitable chestnut tree and climbed up. From its spongy limbs I could make out Mae-san and farther to the south the ominous peak of Piro-bong in Kumgang-san.

By the time we got back to the vehicle, it was near dark. Mr. Han had spent the afternoon setting up a camp fire and preparing dinner. We set up our two four-man Sahale tents sponsored to me by the South Korean outdoor gear company ZEROGRAM. We ate our delicious dinner chased down with mountain berry flavoured soju that Mr. Han had picked that day. After dinner, I looked up at the star-filled night and reflected on how today’s scenery had lacked, but the tales hadn’t.

I wondered if there were plenty more out there?

이 씨는 아마 내 질문에 대한 답을 몰랐는지, 또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다 무슨 말을 하려는데, 박성호가 끼어들었다. 소름 끼치는 결말을 숨기려는 듯했다. 박 씨는 비적들은 살해되지 않았고, 포로가 되었으며, 얼마 후 북조선인으로 남거나 남조선으로 귀환할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졌을 거라고 했다. 그의 대답은 이 사건이 일어난 시기에 의문이 들게 했다. 이 씨의 얘기처럼 이 사건이 전쟁 후에 벌어졌다면 그들은 틀림없이 심문을 받고 폭도로 살해되었지 전쟁포로로 끌려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일어나 나무가 우거진 능선을 따라 남서쪽으로 계속 걸었다. 나무의 틈새로 나는 백두대간이 앞쪽에 있다는 것을 알 수는 있었으나, 아직은 멀리 떨어져 있어 예정한 시간에 도착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그래서 나는 쓸만한 사진을 찍을 수 있을 만한 장소를 찾아 나섰다. 그런 곳은 어디에고 없었다. 대신 나는 적당해 보이는 밤나무 한 그루를 찾아 나무에 올라갔다. 밤나무의 폭신한 가지로부터 매산을 알아볼 수 있었고, 더 멀리 남쪽으로는 불길해 보이는 금강산 비로봉이 보였다. 

우리가 자동차로 돌아왔을 때는 날이 저물어 어둑어둑했다. 모두 정말 녹초가 돼 있었다. 운전사 한명수는 오후 내내 캠프파이어와 저녁 준비를 해두었다. 우리는 남한의 아웃도어 장비 회사 ZEROGRAM에서 후원한 4인용 사할리 텐트 2동을 재빨리 쳤다. 모두 한 씨가 그날 따온 산딸기로 맛을 낸 소주를 곁들여 맛있는 저녁 식사를 했다. 저녁 후, 나는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바라보며, 경치는 볼 것 없었으나 이야기는 풍성했던 하루를 돌아보며 생각에 잠겼다.

저 너머에는 더 많은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Published on Jan 30th 2017 as part of a Daum crowdfunding se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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