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rah Brown is a female Brit who held an obsession with the Himalayas, but still she had never attempted a through-hike anywhere. One day, she read a travel article written by journalist Daniel Adamson for the Guardian newspaper. Daniel had approached me about the 백두대간 in 2013 and then came to Korea to explore a section of it, having a memorable time. That article had an effect on Sarah, because next thing she did was buy the Baekdu Daegan Trail Guidebook, quit her job in the civil service, and then planned how to ‘start walking’ the world.
사라 브라운은 히말라야에 꽂힌 영국여성인데 어디서도 연속종주 (through-hike: 며칠이든 중간에 쉬지 않고 연달아 걷는 산행)를 해본 적은 아직 없었다. 그녀는 어느 날 저널리스트인 다니엘 아담슨이 가디언 신문에 기고한 여행기사를 읽었다. 다니엘은 2013년에 나에게 백두대간에 대해 물어보더니 결국 한국에 와서 백두대간을 일부 탐사하며 추억에 남는 시간을 가졌었다. 그 기사가 사라를 동하게 만든 것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그 후 그녀는 백두대간 산행 가이드북을 사고, 공무원 일을 접고, 세계를 ‘걸어서 돌아다닐’ 방법을 궁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I asked her if she found the guidebook useful?
“I cut up the book in order to save weight, it’s the first time I have ever cut up a book,” she answered.
‘What?’ I wasn’t sure to be offended or not, ‘She cut the guidebook up?
그녀에게 가이드북이 쓸 만했는지 물어봤다.
“무게를 줄이려고 책을 잘랐어요. 책을 잘라보기도 난생 처음이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엥?’ 기분 나빠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 ‘가이드북을 잘랐다고라?’
With no language skills, no job, and no cellphone, how on earth would she cope in Korea? Not only that, but the 백두대간 was to be Sarah’s introduction to through-hiking, she was a complete novice, and to top it all off, she was a woman doing it alone! I thought this was all very bold and adventurous. How would the Koreans react? I had to trust that the people of the 백두대간 would take good care of her. I felt there was a sense of obligation by the Korean people to assist foreigners roaming in the mountains with big bags on their backs. Upon inquiring, the Koreans were often struck with awe and disbelief that a foreigner would make the effort to come to Korea to trek its mountains, especially the 백두대간, and so in return through hospitality, they would help ensure that their stay was at least memorable.
말도 모르고 직업도 없고 게다가 휴대폰도 없이 한국에서 도대체 어떻게 지내려고? 그뿐인가, 그녀는 완전 초짜인데다 백두대간을 자신이 연속종주에 입문할 곳으로 삼을 작정이었다. 그것도 여자 혼자서! 이건 대담한 모험으로 보였다. 한국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백두대간의 사람들이 그녀를 잘 돌봐줄 걸로 믿고 기댈 수밖에 없었다. 한국인들은 배낭을 메고 산을 헤매는 외국인을 도와줘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것 같으니까. 한국인들에게 물어본 결과, 그들은 외국인이 한국에서 산행을, 그것도 특히나 백두대간 등반을 위해서 일부러 찾아온다는 사실에 대개는 놀라며 못 믿어 하고 경외심까지 품는다. 그러니 그들이 지내는 동안 최소한 추억거리는 만들 수 있게끔 친절을 베풀어주시리라.
So, in April 2015, she caught a flight to Korea. On the flight over, she again studied the guidebook and learnt ‘10 essential Korean words’. Her plan was to walk for at least three weeks along a section of the Baekdu Daegan from백복령 동해시 간원도southwards to 천왕봉 in 지리산. Due to national park winter closures, Sarah would avoid 소백산 and 월악산 and try to be in 덕유산 and 지리산 when they reopen in May.
“Glad I brought the four season sleeping bag.” Sarah emailed me in late April from a smoky and noisy PC방 in김천시. ‘Poor girl, she didn’t have a phone,’ I remembered. The idea of someone using a PC방 in 2015 to communicate with the outside world was sadly humorous.
그리하여 사라는 2015년 4월에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비행기에서 그녀는 가이드북을 들여다보면서 ‘필수 한국어 열 가지’를 배웠다. 그녀의 계획은 강원도 동해시의 백복령에서부터 지리산 천왕봉까지 백두대간의 일부를 최소한 3주 동안 걷는 것이었다. 동절기 동안 폐쇄되는 국립공원인 소백산과 월악산은 피하고, 덕유산과 지리산이 5월에 다시 개방될 때 거기에 도착하도록 할 작정이었다.
“사계절용 슬리핑백을 가져와서 다행이에요.” 사라는 늦4월에 김천시의 연기 자욱하고 시끄러운 PC방에서 나에게 이메일을 보내왔다. ‘불쌍한 여자 같으니라구, 휴대폰도 없었지.’ 그녀의 기억을 더듬어본다. 2천 하고도 15년에 바깥세계와 연락하기 위해 김천의 PC방을 이용하고 있는 영국여자를 떠올리니 웃기고도 서글퍼 보였다.
She typed, “I’d be very grateful if you would let me know if you can confirm that the 해인산장 still exists and is open at the moment? I am struggling with my lack of a phone and 10 words of Korean.” As I read her words, I could almost hear her reciting them aloud above the racket of Gamers playing League of Legends, StarCraft, and Diablo. “I am considering a long day from 괘방령 to 해인산장 but before I commit, it would be good to know if Mr. Kim Yong Won still runs the shelter,” her voice rising above the din.
Sarah was inquiring about the해인 산장 under 삼도봉 1176m in 부항면, 김천시, it was featured in the guidebook. That she wanted to walk from괘방령 to 해인산장 to get there was an, “ambitious 26km walk. Not an easy feat with a big bag in the Korean mountains,” I typed loudly back at her through the email.
“해인산장이 아직도 있는지, 그리고 지금 영업을 하는지 확인 좀 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음요. 전 휴대폰도 없이 한국말 열 마디만 가지고 버티고 있는 중이에요.” 그녀의 글을 읽는 동안 리그오브레전드,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 등의 게임이 열띠게 벌어지고 있는 칸막이들 틈에서 소리 내서 말을 읊으면서 타자를 치고 있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괘방령에서 해인산장까지 종일 걷는 코스를 생각 중인데 확정하기 전에 미스터 김영원이 아직도 산장을 운영하는지 확인해보는 게 좋을 듯요.” 소음 사이로 들리는 그녀의 목소리.
사라는 김천시 부항면에 있는 1,176m의 삼도봉 자락에 있는 해인산장에 대해 묻고 있었다. 그곳은 가이드북에 특별히 소개돼있다. 괘방령에서 해인산장까지 26km나 걷겠다는 건 “야망이 앞선 생각입니다. 한국의 산을 커다란 배낭을 메고 걷는 건 만만한 일이 아니에요.” 나도 이메일을 통해 목청 높여 타자를 보냈다.
“I want to take a break from tenting, smoked eggs and tuna, and sleep in a Korean accommodation in the mountains with real Korean food and people.” She yells back through the keyboard. “It must be part of my experience!”
“Okay then!” I yell back.
“텐트 생활에 훈제계란과 참치로 끼니를 때우는 신세를 잠시라도 벗어나서 진짜 한국음식을 먹고 한국사람들을 만나고 한국의 산장에서 자고 싶어요.” 그녀가 키보드로 소리쳐 대꾸했다. “이건 꼭 체험해봐야겠다구요!”
“알았어요!” 내가 소리쳐 대답했다.
Before I called the number, I fondly remembered my encounter at 해인산장 back in 2007. Andrew and I were out of water, and made the descent to the spring under the peak. There we saw the sign to해인산장and decided to go there. On our arrival we were met by a very old lady, who we later found out to be the grandmother of the owner 김용원, an ex-mountaineer. She was sitting in the lounge taking long slow tugs on what were extra-long-cigarettes. Andrew being a smoker and upon seeing an undistinctive Korean marked packet, excitedly thought they might be North Korean and politely asked for one. She said nothing and tossed him the packet gruffly across the floor. We liked her style.
전화를 걸기 전에 나는 2007년에 해인산장을 찾았던 기억을 즐겁게 떠올려봤다. 앤드류와 나는 식수가 떨어져서 봉우리 아래 샘 쪽으로 내려왔다. 거기서 우리는 해인산장 안내판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가기로 했다. 도착하자 호호백발의 한 할머니가 우리를 맞았다. 나중에 알게 된 바로, 그녀는 왕년에 등산가였던 산장 주인 김용원씨의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휴게실에 앉아서 보통 것보다 더 긴 사이즈의 담배를 아주 느긋한 동작으로 피우고 계셨다. 애연가인 앤드류가 한글이 적힌 처음 보는 낯선 종류의 담배를 보고는 흥분해서 북한산인 것 같다면서 공손히 한 가치를 부탁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퉁명스럽게 담뱃갑을 그의 앞 바닥에 툭 던져줬다. 그녀의 그런 태도가 우리는 좋았다.
I called 김용원and was surprised to find out that he remembered us. I managed to explain to him that there was a solo female foreigner hiking the 백두대간 and that she was coming to stay at his 산장 on April 30th. He told me not to worry about anything.
I emailed Sarah back and told her it was all arranged.
The following are excerpts from her stay there.
김용원씨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놀랍게도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혼자서 백두대간을 산행하는 외국인 여성이 4월 30일에 그의 산장에 와서 자고 싶어 한다는 것을 겨우겨우 설명해냈다. 그는 아무 걱정 말라고 말했다.
나는 다시 사라에게 이메일을 써서 숙소가 주선됐다고 말해줬다.
다음은 거기에 머물렀던 그녀의 이야기 중 일부다.
“The day had started from 괘방령 very misty, it had rained heavily practically all day the day before, but it cleared up in the afternoon. I got on to the ridge in good time and did fantastically well completing the first section to the cow monument (우두령) by 10am. I didn’t get the 360 degree views but the weather cleared up in the afternoon.”
“From 삼도봉, I recall it’s a long walk down to 해인산장?” I asked her.
“Oh my word when I think of it even now my feet throb.” She moaned.
“I pressed on, summited 삼도봉 relatively straightforwardly, well after the fixed rope incident it couldn’t get any harder right? I found the turning for the mountain shelter, took it and came across the spring not long afterwards – bliss! After a long, very hard on the feet, slog down a mountain road I arrived at the sanjang.”
“What fixed rope incident are you talking about?” I asked.
“Well you have to remember that I was walking the other way, so the descents in your book became my ascents. There were so many of them that I became a pro climber, like a mountain goat, well a slow moving mountain goat. By the end of the walk I got upper body strength I never knew I had but would rather not have discovered it this way.”
“아침에 괘방령은 안개가 자욱했어요. 그 전날 거의 하루 종일 비가 많이 왔거든요. 오후에는 안개가 걷혔어요. 알맞은 시간에 능선에 도착해서 오전 10시에는 우두령의 소 상像까지 첫 코스를 환상적으로 잘 마쳤어요. 시야가 사방으로 다 트이지는 않았지만, 오후에는 날씨가 갰어요.”
“삼도봉에서 해인산장까지는 내 기억에 한참을 걸었던 것 같은데요?” 내가 물었다.
“아이구, 생각만 해도 지금도 발이 욱신욱신해요.” 그녀가 신음소리를 냈다.
“삼도봉까지는 별 어려움 없이 곧장 왔어요. 뭐 밧줄 손잡이 코스도 겪어냈는데 그보다 어려운 게 또 있을려구요, 안 그래요? 대피소로 가는 길을 발견하고 그쪽으로 갔더니 얼마 안 가서 샘이 나왔어요. – 축복이었지요! 그런데 그 멀고 험한 산길을 내려와서 마침내 산장에 도착하기까지는… 발이 정말 힘들었어요.”
“밧줄 손잡이 코스라니 무슨 말이죠?” 내가 물었다.
“아 그건, 난 다른 방향에서 왔기 때문에 당신 책에서는 내려가는 코스가 나에겐 올라가는 코스가 됐단 걸 알아야 돼요. 가파른 오르막길이 워낙 많아서 [밧줄 손잡이를 붙잡고 오르다 보니] 나도 이젠 프로 등산가가 다 돼버렸어요. 산양 급이랄까. 뭐, 쫌 꾸물대는 산양 말예요.^^ 다 오니까 저 자신도 상상을 못했을 정도로 상체 힘이 좋아져 있더라구요. 이런 식으로 깨닫게 된 건 별로지만.”
Sarah arrived, unsure if she was at the right place, reading Korean was difficult.
“Being early in the season the place was really quiet, the other women arrived in a car they weren’t hikers but they weren’t old either, I have no idea why they were there? Mr. Kim was outside chopping logs. I kind of guessed I had got to the right place because of all the ropes at the entrance.”
The climbing ropes had been mentioned in the guidebook.
아무튼 사라는 도착했다. 제대로 찾아왔는지는 자신이 없었지만… 한글을 읽는 것은 힘들었다.
“아직 철이 이른 편이어서 산장은 아주 조용했어요. 차를 타고 온 다른 여자손님들은 등산객은 아닌데, 나이가 많아 보이지도 않았어요. 그 사람들은 뭐 하러 온 건지 알 수가 없었어요. 김씨는 밖에서 장작을 패고 있더군요. 문간에 자일이 많이 놓여 있는 걸 보고 제대로 찾아왔다고 생각했어요.”
가이드북에서 내가 그 등산 자일을 언급했었기 때문이다.
It seemed that Mr. Kim’s wife had been tasked to take care of Sarah. However, for the next couple of hours, Sarah wasn’t sure what was going on?
“My whole trip I had a phrase book, or a point-to-it-by-hand-book. I used it daily except of course on the very rare occasions when I was completely alone. So I got quite good at having conversations with the phrase book.”
I think what Sarah meant was that she got good at pointing to translated words in her phrasebook. She wanted to eat dinner, so now it was time to put her pointing-at-it phrase book skills to use.
“I was always happy to eat what was put in front of me, apart from any thing that has had feet at one point in its life, and although octopus don’t have feet, I don’t think I’ll ever find octopus raw or cooked acceptable at breakfast.”
“What? Did they serve you raw octopus?” I asked.
김씨의 부인이 사라를 맡기로 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다음 몇 시간 동안 사라는 오리무중을 헤매야 했다.
“여행하는 내내 회화책을 가지고 다녔는데 손가락으로 문장을 짚어 보여주면 되는 책이죠. 날마다 애용하는 필수품이었지요. 물론 아주 드물게 완전히 혼자였던 때만 빼고요. 그래서 회화책으로 대화하는 데는 꽤 익숙해졌어요.”
사라가 한 말은, 그러니까 회화책 속의 번역된 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데 달인이 됐다는 뜻일 거다. 그녀는 저녁을 먹고 싶었으니까 이젠 자신의 손가락질 비기를 다시 써먹어야 할 때였다.
“난 네발을 ‘가진 적이’ 있는 것만 빼고 내 앞에 놓인 건 다 잘 먹어요. 근데 낙지는 발이 없어도 날로든 익혀서든 간에 아침에 먹긴 영 그래요.”
“아니, 산낙지를 주더란 말이에요?” 내가 물었다.
“No, I’m a vegetarian. I saw it served on a couple of other occasions for breakfast in Korea.”
She’s a vegetarian! I wondered how that went then?
“I have no idea if I will get fed, I’m expecting not, we’ve had a long conversation about it and I’ve been shown a bowl of rice.” Sarah began to wonder if her ‘good phrasebook skills’ were getting her anywhere with Ms. Kim. “When I was with Ms. Kim I felt like she really wanted to talk to me and look after me and that she found it as frustrating as I did that we didn’t have a common language. It didn’t help either that sometimes Mr. Kim would shout from the other room, ‘more beer more chiksa!’”
“What do you think was going on with Mr. Kim?” I asked.
“I wasn’t sure if he meant beer for himself, other guests, or us, but then Ms. Kim would dash away, and on her return she would have another bowl of rice for me, however, she seemed more interested in my phrase book than Mr. Kim ‘who thinks the answer to everything is beer!’ I ate a lot of rice.”
“아뇨, 전 채식가예요. 한국에서 아침에 그게 나오는 걸 몇 번 봤어요.”
채식가였군! 그래서 어떻게 됐는지 궁금했다.
“과연 밥을 얻어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더군요. 못 얻어먹을 것 같았어요. 오랫동안 ‘회화’를 하고 나서야 겨우 밥이 한 공기 나왔어요.” 사라는 자신의 ‘손가락질 비기’가 김씨 부인에게도 과연 통할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김씨 부인하고 있을 때, 그녀는 정말 나와 이야기하고 싶고 날 돌봐주고 싶은데 말이 안 통해서 나만큼이나 답답해하는 것 같았어요. 가끔씩 김씨가 다른 방에서 ‘맥주 더 식사 더!’ 하고 소리치곤 했는데 그것도 도움이 안 됐어요.”
“김씨는 뭘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내가 물었다.
“그가 맥주를 자기가 마시려고 한 건지, 다른 손님, 아니면 우리를 위해서 주문한 건지는 몰라도 그럴 때면 김씨 부인은 달려갔다가, 돌아올 때는 날 위해 밥을 또 한 공기 가져오곤 했어요. 하지만 그녀는 ‘맥주가 모든 것의 답이라고 생각하는’ 김씨보다는 내 회화책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았어요. 난 밥을 엄청 많이 먹었어요.”
“What about those other women you had seen on arrival?”
“The other women staying felt so sorry for me so they gave me two pro-biotic yogurts (야쿠르트). Obviously language was the main problem. They were drinking beer, burping and gorging on the takeout that I guess they got from the village. I don’t eat meat, so appreciated the yoghurts. But I was beginning to think that I might have to dig into my own meagre supplies and eat a chocolate bar.”
So with her bowl of rice, Sarah ate her chocolate bar.
“And soon after that Mr. Kim came and got me and took me into their house to eat. I was very pleased; you have no idea.”
“Can you remember what you ate?”
“도착할 때 만났던 여자들은 어떻게 됐어요?”
“다른 여자손님들은 내가 너무 불쌍했는지 프로비오틱 요구르트(야쿠르트)를 두 병 줬어요. 언어가 문제의 핵심인 게 분명했어요. 그들은 맥주를 마시고 트림을 하면서 마을에서 싸온 것 같은 음식을 와구와구 맛있게 먹고 있었어요. 나는 고기를 먹지 않으니까 요구르트만으로도 감사했어요. 하지만 난 이제 나의 빈약한 보급품인 초콜렛이나 먹고 저녁을 때워야 하나보다 하고 생각하기 시작하고 있었죠.”
그래서 그녀는 밥에다 초콜렛 바를 얹어 먹었다.
“그런데 곧 김씨가 오더니 집에 가서 식사하자며 날 집안으로 데리고 갔어요. 정말 기뻤어요. 내가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를 거예요.”
“뭘 먹었는지 기억나시나요?”
“A delicious array of, lots of dishes of green things and more rice and some soup as well which I think included tofu. We managed ‘goodness only knows how’ to establish that I don’t eat meat. ‘No meat,’ was part of my small Korean vocabulary.”
Cleaned, fed, and exhausted from the long day, Sarah went to sleep in her ondul-room but as she lay on the warm floor listening to the gushing mountain stream, she was still unsure what the morning routine would be, “I was hoping to get a lift up the horribly long steep road tomorrow but I’m not sure that will be forthcoming.
“The next morning, although not until 7am ‘I had wanted to depart earlier’ I ate my first Korean breakfast with them, and it wasn’t raw octopus, instead it was lots of green stuff, rice and bean sprouts.
“To experience really good Korean food, you have to stay with a family, and then after breakfast Ms. Kim presented me with a made packed lunch of 김밥, I was thoroughly spoilt! And to top it all off, they gave me a lift to the start of the trail! I couldn’t believe it! Everything came to just 36,000 won. I still have the receipt. Not bad considering the amount of rice I managed to consume.
“여러 가지 맛있는 채소 반찬에다 밥을 더, 그리고 내 생각엔 두부가 든 국도 있었어요. 어쨌든 간에 이제 우린 내가 고기를 안 먹는다는 점을 분명히 통했어요. ‘고기 안 먹음’이 내가 알고 있는 얼마 안 되는 한국말 중의 하나였거든요.”
씻고 먹은 후 사라는 하루의 피로에 지친 몸을 끌고 온돌방으로 자러 갔지만 계곡 물소리가 들리는 따뜻한 바닥에 누웠을 때, 그곳의 아침 일과가 어떻게 되는지는 또한 오리무중이었다. “내일은 그 끔찍하게 멀고 가파른 길을 차를 좀 얻어 타고 갔으면 좋겠지만 그게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다음날 아침 7시가 돼서야 – 난 더 일찍 떠나려고 했는데 – 그들과 처음으로 한국식 아침을 먹었어요. 산낙지는 없었고 온갖 채소 반찬과 밥과 콩나물이 나왔어요.”
“진짜로 훌륭한 한국음식을 맛보려면 가정집에서 지내봐야 해요. 아침을 먹고 나서 김씨 부인은 손수 만든 김밥을 점심으로 싸줬어요. 완전 공주 대접이었지요! 그런데 게다가 등산로 입구까지 차를 태워주다니, 믿을 수가 없었어요! 이 모든 걸 단돈 3만6천원에 말이에요. 영수증을 아직도 가지고 있어요. 내가 먹어치운 밥에 비하면 나쁘지 않죠.”
“It was the first time I had stayed in a mountain shelter, so it was all pretty new to me. There are other newer places that have sprung up on the road on the way to their place but I’d stay at Mr. and Ms. Kim’s’ again just for the experience. Mr. Kim was a real character.”
I received a few more ‘amusing’ emails from Sarah as she made her way south along the Baekdu Daegan. Here are a few highlights;
“The owner of the 치재마을민박 (아영면 남원시) was also a real character, and I was almost married off in 매요리 (운봉읍 남원시). I literally ran for the hills at first light! Despite the language difficulties I’ve been really well looked after wherever I have stayed the Koreans are unbelievably hospitable.”
“산장에 묵기는 그게 처음이었어요. 그래서 모든 게 새로웠어요. 그 산장으로 가는 길에는 새로운 숙소들이 많이 들어서 있지만 난 김씨 부부의 산장에 그냥 또 가보고 싶어요. 김씨는 정말 진국이었어요.”
백두대간을 따라 남하하는 동안 사라는 ‘잼있는’ 이메일을 몇 통 더 보내왔다. 그 중 몇 가지 하이라이트.
“치재마을(남원시 아영면) 민박집 주인도 진국이었어요. 그런데 매요리(남원시 운봉읍)에선 졸지에 팔려서 시집갈 뻔했어요. 거짓말 아니라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산으로 뺑소니를 쳤어요! 말은 안 통했어도 가는 데마다 정말 극진한 보살핌을 받았어요. 한국인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친절해요.”
And then on May 17, 2015 after her journey was over, I got this;
“I’ve just landed in 진주, slightly shell shocked after 22 days in the hills. I made the summit of 천왕봉 yesterday morning around 6.15am by which time most of the locals were on their way down having seen the sun rise so I had it all to myself for a few moments. It’s been a real adventure, I’m a little disappointed not to have completed more of the trail but I guess that gives me an excuse to come back another time.”
Sarah.
그리고 그녀의 여행이 끝난 2015년 5월 17일에 나는 다음 이메일을 받았다.
“방금 드디어 진주에 착륙했어요. 22일이나 산에서 지내고 내려오니 마치 미약한 폭격 노이로제에 걸린 듯한 기분이네요. 어제는 아침 6시 15분쯤에 천왕봉 꼭대기에 올라갔었어요. 여기 사람들은 대부분 일출을 보고는 내려가버려서 한동안 나 혼자서 천왕봉을 독차지했지요. 정말 대단한 모험이었어요. 백두대간을 완주하지 못한 게 좀 아쉽긴 하지만, 다음에 또 올 핑계가 될 것 같아요.”
사라.
로저 셰퍼드 쓰고 이균형 옮김: Published May 14, 2016 (Daum crowdfunding)